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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흘낏 보기 1

- 서울에서 카사블랑카까지... 지구는 둥글었다. 여행은 참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무엇을 보았는가?무엇을 먹었는가?어디서 잤는가?누구와 함께 갔는가? 그 모든 것이 여행이라는 한 단어 속에 우겨넣어질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행은 남과 나누기 어려운 나만의 내밀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위의 모든 질문 앞에는 '나의' 라는 어절(語節)이 덧붙여져야만 한다. 그럼 기행문은 또 뭔가?본 것을 정리하는 일이 기행문일 수도 있겠고,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도 기행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류의 기행문을 읽다보면 '보고서'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이 든 (?) 이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신기한 일들, 기대하지 못했던 경험들...심지..

흘낏 보다. 2026.02.20

개갓냉이

- 생명의 견고한 본질, '살아냄' 무수한 소문 속의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얼굴만 봐도 마음이 아파지는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압권이었고, 서사가 워낙 사실적이라 실존 인물의 전기 영화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100% 허구라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친절할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는 전개가 오히려 짙은 여운을 남기더군요. 조만간 다시 한 번 보리라는, 아마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남긴 그런 영화였습니다.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그러했겠지만 내게도 역시 두 개의 대사(臺詞)와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거짓 없는 진실이다!’ 라는 대사입니다. ‘아름다움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진실(眞)이어야 한다.’는 명..

뽀리뱅이

- 노랗게 피어난, 너의 이름은...... 집에서 입을 여름 티셔츠 한 장을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흰색의 옷, 조금 넉넉한 사이즈로 한 장을 골라 계산을 합니다. ‘적립하시겠어요?’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묻습니다. ‘네!’ 핸드폰 번호를 불러드리고 이름도 알려드립니다. 이름을 듣고 난 아주머니께서 살짝 놀라며 내 얼굴을 쳐다보십니다. 익숙한 반응입니다. ‘이름은 예쁘지요?’ 내 말에 허를 찔린 양 아주머니께서는 서둘러 ‘아니요, 이름도 예쁘시네요!’하며 웃으시네요. 아름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이 70에 가까운 내 또래의 친구들 이름에 비한다면 너무나 예쁘고 세련된 이름입니다. 멋쟁이 친정아버지께서 예쁘고 우아하게 살라며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그러나 나는 ..

망초

- GMO 반대운동의 방아쇠가 되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밥을 차려본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사실 가장 쉽고 간편하고 맛있고 실패할 확률이 낮은 반찬이 바로 고기요리이거든요. 그러나 자주 사용할 수 없는 고기류 대신 단백질 식품으로 이용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생선입니다. 생선요리 다음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두부를 빼놓을 수 없지요. 두부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자주 혼잣말을 합니다. 문제는 두부의 원재료인 ‘콩’입니다. 이 콩이 고민거리입니다.널리 알려져 있듯 콩이나 옥수수는 대표적인 GMO (유전자 변형 생물체)입니다. 안전한 두부를 먹으려면 당연히 GMO 콩이 아닌 국내산 콩으로 만든 것을 골라야 하겠지만 가격이 만만치 ..

쇠비름

- 애타게 보고 싶었던 그 꽃... 몇 년 전 지인에게서 얻은 다육이들이 알뜰살뜰 돌본 남편 덕분에 참으로 멋진 모습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동안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게 지냈던 나는 이사를 앞두고 베란다를 정리하면서 훌쩍 자란 이들의 모습에 크게 감탄했고, 새 집으로 와서는 화분 몇 개를 거실과 침실에 두고 늘 보고 있답니다. 반짝이는 잎과 길게 늘어진 튼실한 줄기, 틈만 나면 흙을 찾아 뿌리를 내리려는 듯 마디마다 가늘게 달리는 수염... 잘 자라준 다육이들이 참 고맙습니다. 이들의 멋진 모습은 건조한 아파트 생활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큰 기쁨이기도 하지요. 길가 보도블록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자라난 쇠비름을 봅니다. 작지만 두툼한 잎의 모양을 보면 영락없는 다육이입니다. 불그스름한 줄..

뽕모시풀

- 함께 있어 완벽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아름다움 꽤 오랜 시간 꽃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지냈네요. 가족 내의 여러 가지 일도 있었고, 여행도 다녔고, 여전히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귀를 쫑긋거리며 때로는 희망과 안도를, 때로는 답답함과 절망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안정한 일상이 꽤나 오래도록 지속될 것임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 속에서도 크랙 정원 안의 꽃들에게서 눈길을 완전히 뗀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작년에 내가 보았던 꽃들, 사진으로 담았던 꽃들 그리고 이야기로 만들었던 꽃들은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의 꽃들일 뿐 지금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꽃들을 바라보고 ..

고들빼기와 노랑선씀바귀

- 나물의 쓴맛, 삶의 쓴맛 고들빼기>노랑선씀바귀> 5월이 가고 오늘부터는 6월입니다. 달력으로 계절을 가늠하자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온 셈이네요.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제와 다름없이 조용합니다.이즈음 도시의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꽃을 단연 ‘고들빼기’와 ‘노랑선씀바귀’입니다. 우선은 둘 다 일반적인 봄꽃들에 비해 그 크기가 큰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둘 다 화사한 노란색이라 보지 못한 척하고 지나가기에는 그 존재감이 크네요. 씀바귀나물, 더구나 노랑선씀바귀나물은 먹어 본 기억도, 내가 직접 만들었던 기억도 없지만 고들빼기김치에 대해서는 숨겨놓은 일화가 있습니다.몇 년 전 고들빼기김치 만들기에 도전해 볼 요량으로 길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도 도와 드릴 겸 고들빼기를 ..

개소시랑개비

- ‘다양성’의 참 의미를 생각합니다. 거리를 가만히 걷다 보면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가득합니다.노랑선씀바귀, 고들빼기, 아직도 남아있는 서양민들레, 여전히 그 세(勢)를 줄이지 않고 있는 뽀리뱅이, 풀꽃은 아니지만 황매화의 꽃도 피어나 눈부신 노란빛의 세상입니다. 꽃들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질서와 달리 우리가 발붙인 세상은 어지럽기만 합니다. 믿기 힘든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상상조차 못 했던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이 참담할 정도로 넓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합니다. 마지막 보루처럼 붙들고 있던 믿음마저 무너뜨리는 이 저열함이 극히 일부의 일탈일지라도, 과연 어디까지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해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꽃들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다양한 ..

개꽃아재비

- 인간의 세상, 꽃의 시간 일주일 남짓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봄은 깊어지고 여름의 기운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 울타리마다 피어난 쥐똥나무의 꽃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보도블록의 틈새에는 큰개미자리의 꽃들이 피어났다가 벌써 작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꽃들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자칫하면 그들의 가장 어여쁜 모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고들빼기의 꽃이 얼추 시들고 나니 노랑선씀바귀가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피어나 도시 전체가 옅은 노란색으로 화사해졌습니다. 아파트 앞의 배나무 과수원을 없애버리고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은 이미 예고가 되어 있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배꽃의 아름다운 밤도, 때늦은 꽃샘바람과 봄에..

반하 (半夏)

- 상식을 깨는 모습에 반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나날이 푸르러지고 있습니다. 메말라 황량했던 겨울의 그 뒷동산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제법 울창한 숲의 모습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네요. 배꽃이 다 지고 나니 층층나무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무거운 가지, 그 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들의 춤사위가 아침을 평화롭게 열어줍니다. 햇빛 욕심쟁이 층층나무, 마음껏 빛을 받아 안고 있네요. 아침이 이처럼 편안하게 열리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아마도 먼 옛날 숲 속에서 살던 내 조상의 조상님들께도 아침은 이런 모습으로 열렸겠지요. 뇌 과학자들의 이론에 따르자면 인간의 정상 상태는 ‘멍 때리는 상태’라고 합니다. 아무 할 일이 없고 그래서 걱정거리도 없고 그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