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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개쑥갓 - 작은 풀씨의 기억, 세상을 바꾸는 힘   2, 3일 날씨가 바짝 춥더니 거리에 떨어져 누운 낙엽의 두께가 제법 무겁게 느껴집니다. 오가는 발걸음에 밟혀 형태를 잃고 바스러진 낙엽도 자주 눈에 띕니다. 낙엽을 치우는 손길도 부산스럽습니다. 몇 년 전 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질을 하는 손길보다는 낙엽치우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떨어진 낙엽을 치우며 비질하는 소리, 모인 낙엽을 태우는 냄새...그 모습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어서인지 천둥 같은 소리로 매연을 뿜어내며 낙엽치우는 기계소리를 들으면 가을날의 낭만은 여지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봄과 여름을 지내며 도시의 거리에 한 뼘의 청량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던 그 사랑스러운 이파리들이 영락없는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도.. 더보기
벋음씀바귀 - 늦가을, 벋음씀바귀의 화양연화를 봅니다.    6개월마다 받는 정기 점진을 받으러 집을 나섭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계단 위에는 노란 은행잎과 발그레한 중국단풍나무의 잎사귀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습니다. 두 가지 색이 어울려 너무도 곱습니다.   내 몸의 일부를 열어 낯선 이에게 보다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굴욕감까지 느껴는 것을 보면 아직은 건강한가 보다고 혼잣소리를 하며 헛웃음을 날려 봅니다. 그러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검사를 받을 때에도 별 생각이 없고 그저 귀찮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요즘은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여러 가지 상상도 하게 되네요. 만에 하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가족들에게는 바로 알려야 하나? 하필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 더보기
큰방가지똥 - 날카로운 가시, 그 내면의 연약함   멋진 책을 만나 읽느라 지루하지 않았던 한 주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2권입니다.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마시멜로) 브로큰 하버> (타나 프렌티 지음, 박현주 옮김, 엘릭시르)가 그 책들입니다.  시간 죽이기 딱 좋은 범죄 소설이라 생각하며 시작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상처 깊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이 녹록지 않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매우 달랐다는 점도 이 독서가 행복했던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앞의 책의 주인공은 자신과 상대방의 사랑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과거의 결핍과 상실을 이겨나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어느.. 더보기
애기황새냉이 - 매운 겨울날을 기다리는 그 의연함과 애잔함...   비라도 올 것 같이 흐린 아침, 베란다 창틀의 화분걸이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아파트 전체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데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배경으로 새들이 가끔씩 포로롱거리며 낮게, 낮게 날고 있습니다.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듯 평화로운 풍경, 마음이 차분하고 이유 없는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필시 좋은 일이 생길거야!’ 나는 중얼거려 봅니다. 그 멋진 예감이 길고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사뿐히 지나 현실로 들어올 것이라 믿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베란다의 작은 내 정원, 작년에 친구가 선물한 포인세티아가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지 잎사귀 중심 부분의 색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저 꽃이 피어나는.. 더보기
개여뀌 - 모든 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입동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낮에는 겉옷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거실 앞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의 색도 힘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안간힘을 쓰며 다가오는 가을을 밀어내고 있나 봅니다. 결국은 무릎을 꿇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버팀’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내가 어떻게 그 사연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만 한낮의 여름과 아침, 저녁의 가을이 교차하는 멋진 날들입니다.​ 여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 달도 더 된 것 같습니다. 바로 뒷산의 그늘에 무더기로 피어난 ‘장대여뀌’를 보면서도 그건 크랙 정원에 핀 것은 아니니 하고 눈을 딱 감았더랬습니다. 뒤이어 ‘개여뀌’와 ‘흰여뀌’가 피어나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한 것도 한참 전.... 더보기
냄새명아주 -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꽤나 많은 꽃들을 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크랙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냄새명아주’입니다.  처음에는 중대가리풀인줄 만 알고 그냥 무심히 보아 넘겼지요. 그러나 왜 그 ‘촉’이란 것이 있지 않아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 살펴봅니다. 이내 다른 식물임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하필 학원가라 아이들의 왕래가 종일 빈번한 곳 가로수 아래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찬찬히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 흥미진진합니다.  외모만 보아서는 점잖은 명아주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은데 도감을 .. 더보기
붉은서나물 - 철없던 키다리꽃, 철들어 날리는 멋진 결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하듯 꽃과의 만남도 일종의 인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붉은서나물’과 나와의 인연은 그리 찰떡궁합은 아닙니다. 키가 어찌나 껑충하게 큰지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녀석을 찾기가 힘듭니다. 적당하다 싶으면 크랙 사이에서 피어났다는 사실이 잘 표현되질 않습니다. 어느 날 작은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닥에서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이 꽃을 발견하고는 마음에 담아두었으나 다음 날 가보니 모두가 뿌리째 뽑혀 내동댕이쳐진 모습만 보게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붉은서나물은 크랙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치고는 정말 큽니다. 어떤 녀석들은 1m가 넘을 정도이니 마치 철도 들기 전에 훌쩍 키만 커버린 아들 녀석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혼자 슬며시 .. 더보기
주름잎 - 운명을 받아들이는 너의 자세, 너를 대하는 나의 자세    비가 그치고 나니 갠 하늘의 새 날이 더욱 눈부십니다.이른 아침 나비 한 마리가 9층 높이의 창까지 날아올라와 날갯짓을 합니다.어제 비와 밤새 맺힌 이슬로 날개가 무거울 법도 하건만 저 작은 생명체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지척에 산과 농장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여름엔 각종 벌레들이 집안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침대 위에 모기장을 설치해 자고 있습니다. 약을 쓰기는 싫어서 어릴 때부터의 내 호기심도 채울까 하여 작년 여름에 사서 아직 키우고 있는 벌레잡이풀인 ‘네펜데스’의 벌레잡이 통이 아침 햇살에 눈부신 미모를 자랑합니다. 누가 저 우아한 몸짓이 벌레를 잡아 먹이로 삼으려는 식물의 덫임을 눈치 챌 수 있을까요? 가끔 통을 들여다보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