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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갈퀴덩굴

-  작은 것들끼리 서로에게 기대어 온 세상을 푸르게 덮다.

 


 

 

조금 생뚱맞기는 하겠지만 나는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액션 영화를 즐깁니다. 대부분 시간 죽이기 용이기는 하지만, 생각이 복잡하거나 각 잡고 무언가를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특히 액션 영화를 찾게 되네요.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를 보았습니다. 언젠가 지루하고 힘들었던 긴 비행 중에 자막 없이 보았던 강렬한 기억이 났고 생각이 난 김에 찾아본 것이었죠. 결국은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그 숨 막히게 잔혹하고 그러면서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영화를 보고야 만 것입니다.

앞서 나왔던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프리퀄(prequel)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매력적인 주인공인 퓨리오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영화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엄청난 액션에다가 영웅 서사시와도 같은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긴 상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볼거리나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만 우선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압도적인 사막의 풍경이었습니다. 대체로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막에서 진행됩니다. 그저 바라보기에 사막은 참으로 멋진 곳 같습니다. 붉은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의 모습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사하라의 모래 언덕에 앉아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그런 여행을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포토샵의 이미지 생성을 통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흔히 표현하듯이 풀 한 포기 없는사막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본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생명의 흔적이나 온기가 전혀 없는 세상,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문명이 사라지고 난 후의 새로운 원시 시대, 노골적인 폭력의 시대의 배경으로서 사막은 매우 적절한 설정이었습니다. 사막과 압도적인 폭력은 사실 매우 잘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황폐한 사막 위에 바이크나 개조된 자동차(그 자동차들조차도 단순한 탈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타고 있는 주인공들을 꼭 닮은 인격을 부여받은 기계로 보입니다.)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도는 새로운 유목민, 전혀 새로운 노매드, 폭력의 착취자...

 

이쯤에서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를 상상해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식물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녹색의 땅에서 자라난 빨간 열매를 따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나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별 미화나, 긴 대사 없이도 그냥 그 녹색과 빨간 색의 대조만으로도 말입니다. 식물이 땅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의 지구는 내가 알고 있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행성이었을 것입니다.

 

 

봄이 깊어갈수록 땅은 점점 더 녹색으로 덮여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길을 걷다보면 빈터나 야산의 언저리, 크랙 정원의 틈새까지도 푸르게 덮어 자잘한 꽃을 피우고 있는 식물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꽃이 워낙 작고 꽃의 색도 녹색에 가까워서 쉽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세 면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무심하게 지나치셨다 하더라도 4번의 사진을 보면 , 저 꽃!’이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저 식물도 꽃을 피우는 거야?’라는 물음이 이어서 나오지나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 꽃을 피웁니다. 3번의 사진을 보면 그 꽃이 제법 아름답다는 사실까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갈퀴덩굴의 모습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도 그 잎이 달린 모양이 아닐까 싶네요. 여덟 개의 가늘고 긴 잎이 줄기 주위로 돌아가면서 있어 팔선초(八仙草)’라고도 불리지만 잎의 개수를 자세히 세어보면 6, 7개의 잎이 돌려나기한 경우도 많아서 꼭 8개라고 특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잎의 끝부분을 자세히 보면 바늘처럼 뾰족하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줄기를 손으로 잡아보면 손에 쩍쩍 들러붙는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그 촉감도 잎사귀 모양에 못지않게 특별합니다. 줄기에 가시털이 빼곡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시털을 이용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자라다 보니 덩굴성 식물처럼 아주 무성하게, 빽빽하게 자라나는 것이지요.

 

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황록색의 화관은 4갈래로 깊게 갈라져서 깔끔하고 단아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4개의 수술과 2개의 암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벌써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열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므로 접사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두 개의 공이 붙은 것처럼 보이는데 갈고리같이 억센 털이 나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마치 도깨비바늘처럼 동물들의 털이나 사람들의 옷, 신발 등에 붙어 멀리까지 이동하여 번식할 수 있겠지요. 곳곳에 이 식물이 번성하고 있는 이유가 됩니다.

 

앞서 갈퀴덩굴과 친척 관계인 꼭두서니과의 좀네잎갈퀴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 식물들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까닭은 그 어여쁘고 단정한 꽃과 줄기에 깔끔하게 돌려나는 잎의 모양 때문입니다.

비록 촌수는 좀 멀고 크랙 정원에서 볼 수는 없지만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들 꽃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선갈퀴> <좀네잎갈퀴>
<두메갈퀴> <개선갈퀴>

 

 

돌려난 잎, 넷으로 갈라진 화관, 열매의 모양, 긴 줄기와 역시 긴 꽃대까지 친척들이라 그런지 닮은 구석이 꽤나 많지요?

 

 

우리가 식물, 특히 나무가 아닌 풀꽃들의 생태적 효용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드는 것은 무엇보다 식물들이 식량이나 약재로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식물들이 인간의 주요 식량이라는 점을 두 번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주식(主食)이 아니더라도 식용이나 약용으로도 널리 사용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식물들에 대해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거나 약재로 사용한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식물은 (특히 가난한 자들의) 식량이고 응급 약품 상자였습니다. 물론 동물들에게도 그러했지요. 또 식물은 우리들에게 의복의 재료를 제공해 주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에너지원(땔감)이기도 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문명의 전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종이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게다가 식물을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예술적, 종교적 소재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평생 한 번도 아내에게 정다운 말 한마디 건넸을 법 하지 않은 남자 노인이 영산홍 무더기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봄에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모습입니다. 꽃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환경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식물은 흙에 뿌리를 내려 흙을 붙잡아줌으로써 귀중한 자원인 흙의 유실을 막아줍니다. 식물들이 사라진 민둥산이 홍수에 취약하고 산사태도 잦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요.

 

둘째, 위와 같은 이유로 빗물도 상당히 긴 시간 잡아두어 토양의 건조화를 막는 저수지의 역할을 해줍니다.

 

셋째, 특히 도시의 환경에서 식물들은 지표면의 피복상태를 향상시켜 특히 도시의 열섬 현상을 막아주고 더운 여름날 온도를 낮추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넷째, 수질 정화라는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충 꼽아 본 이러한 역할들을 화폐로 환산해 본다 하더라도 실로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봄 세상의 구석구석을 채우는 작은 꽃, 갈퀴덩굴의 풍요로움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식물이 없는 곳에는 다른 생명들도 살 수 없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바라보기에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사막이라지만 그곳이 인간의 서식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아시스마저 없다면 그런 곳에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약탈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지속불가능함, 희망의 소멸, 삶의 종말... 퓨리오사로 하여금 절망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도 결국은 죽음을 예감한 엄마가 건네주신 한 톨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을 품고 녹색의 땅을 찾아 나서는 퓨리오사를 보며 우리는 안도합니다.  한 톨의 씨앗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결코 꺼질 수 없는 희망의 불씨를 상징합니다. 더구나 홀로 그 길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아기 낳는 노예로 잡혀있던 여성들을 해방시켜 함께 길을 나섬으로써 인간 종의 존속은 물론 연대의 소중함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보잘것없는 갈퀴덩굴들이 서로 기대어 한 몸처럼 땅을 푸르게 덮고 있는 이 봄에, 죽음과 폭력이 폭발하는 액션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진을 쏙 빼버리는 그 혼란스럽고 잔혹한 영화를 끝까지 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Galium spurium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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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자라는 줄기는 덩굴지며, 네모진 가지의 모서리에는 거꾸로 향한 짧고 굳은 가시털이 많습니다. 잎자루가 없는 잎은 6~8장씩 돌려나며 좁은 피침형이며 끝은 까락처럼 됩니다. 잎 가장자리와 뒷면 맥에도 밑을 향한 가시털이 있습니다. 꽃은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취산꽃차례에 달리는데 꽃부리는 연녹색이고 끝은 4갈래로 갈라집니다. 수술은 4, 암술은 2개이며 열매는 겉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털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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