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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덩굴해란초

나폴레옹도 이기지 못한 그 기세, 전진 또 전진!

 








 

 

크랙 정원의 매력은 집 가까이에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꼭 하나의 정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나의 크랙 정원들이 있지요. 말하자면 별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별장의 크랙 정원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도시에서 나서 자란 나는 아는 꽃도 몇 개 되지 않았고 또 꽃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힘도 형편없었습니다. 처음 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대개는 인터넷에 포스팅된 꽃 사진을 보며 그 꽃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고, 꽃에 대한 정보는 많은 부분 도감에 의존했습니다. 꽃 사진들을 보면서 유난히 보고 싶어지는 꽃들이 있습니다. 대체로는 누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귀한 꽃들을 보고 싶어 했지요. 기생꽃, 물매화, 복주머니란, 깽깽이풀 등등. 물론 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화려하거나 예쁘지 않은 꽃, 귀하지도 않은 꽃 중에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들이 있습니다. 순전히 제 취향이지요. '덩굴해란초'도 그런 꽃들 중 하나였습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 꽃이 피는 장소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그곳이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임도 알 수 있었지요. 몇 년을 벼르다 드디어 어느 날 전철에 몸을 싣고 꽃구경을 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때마침 이른 더위로 집에 있어도 바삭바삭한 몸을 구울 것 같은 더위를 피할 길 없으니 지하철 피서도 즐길 겸 해서였습니다.

 

 

참 기가 막힌 꽃이었습니다. 계단, 담장, 바위틈을 가리지 않고 한 줌의 흙이 있는 것이면 어디든 덩굴져 기어가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접사하여 꽃 하나 하나를 찍고 싶은 마음은 쏙 들어가고 이 화려하고도 용감한 꽃의 행진을 온전히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이 식물 덕에 삭막함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도시는 검소하지만 독특한 디자인의 멋진 옷을 걸친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귀화식물인 이 덩굴해란초의 이토록 무서운 기세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나는 감동했습니다. 이 식물이 먼 나라에서 이곳에 도착해서, 이 땅에 뿌리내리고 번식에 성공할 때까지의 눈물겨운 도정이 눈앞을 스쳐갔습니다. 이 도정에서 꽃이 맞닥뜨렸던 숱한 고난과 그 극복을 위한 몸부림의 흔적은 이제 꽃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꽃은 그저 말없이, 여전히 성실하게 생존과 번식이라는 자신의 과업을 오늘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나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들의 유머일까요? 나폴레옹과는 아무런 연고도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을에 이 그림은 왜 걸려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 풍경의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덩굴해란초는 축대의 돌 틈 사이를 비집고 저토록 울창하게 피어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덩굴해란초의 도시 진입은 나폴레옹의 그것처럼 요란하거나 피비린내 나는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덩굴해란초는 귀화식물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보니 덩굴해란초는 남유럽 원산의 한해살이풀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2021년 국립수목원에서 발간한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외래식물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재배식물로 기재되어 있어서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보았던 이 식물이 식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대로 살펴봅니다. 여기서 잠시 외래식물의 정의를 찾아봅니다.

 

국외로부터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유입되어 그 본래의 원산지 또는 자생지를 벗어나 생육하는 식물이랍니다. 외래식물은 또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1. 임시정착식물 : 국내에 의도 또는 비의도적으로 유입된 외래식물 중 귀화식물로 전환되기 이전에 세대교체 및 정착이 불완전한 초기 정착준비종

2. 귀화식물 : 자연생태계에 적응하여 지속적으로 개체군을 형성하고, 10년 이상 생 육, 확산을 통해 자생종과 구분 없이 융화되어 자라는 야생화한 외래식물

3. 불확실종 : 기존에 외래식물로 지정된 바 있으나, 현재 국내 분포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분류군의 실체가 모호한 식물

                                                                                         <산림청 국립수목원 간행 국가표준식물목록 외래식물편>

 

이 셋 중 덩굴해란초의 위치는 2번이 되겠네요.

 

귀화 식물하면 바로 외래식물이 떠오르고, 또 외래식물하면 외국으로부터 유입되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환경유해식물이 떠오르고...그래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귀화 식물은 이미 10년 이상 이미 이 땅에서 자손을 낳아 기르며 살고 있으니 우리의 야생화로서도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죠. 자기 땅에서 뿌리를 박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식물이 인간들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강제로 옮겨져, 낯설고 물선 땅에 내동댕이 쳐집니다. 식물들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 이러한 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라졌을 것입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고, 꽃가루받이 하여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그리하여 가까스로 새로운 땅의 먹이사슬 안으로 자연스레 편입되는 길고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식물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포식자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급격하게 개체 수가 늘고 다른 식물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생태계는 평형상태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그것이 생태계의 본질입니다. 평형을 유지하고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수의 생명을 담아내는 일...식물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이지요. 인간들에 의해 벌어진 일을 두고 식물들 탓을 하는 꼴입니다. 거기에다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도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보는 대신 유해종이다 뭐다 하여 조급하게 해결하려다 보니 식물들에게는 1차에 이어 2차 가해까지 더해지는 셈입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빠르게 해결하려는 죄책감과 조급함이 꼭 좋은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고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세계화(?)되는 식물 세계의 살림살이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니 그에 맞춰 우리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하겠지요.

 

오해의 소지도 많고 또 널리 알려진 꽃들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환경부 지정 생태계 교란식물을 소개합니다. 외래식물들이 모두 유해종이 아님을 알게 하는 중요 정보입니다.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가시상추, 갯줄풀, 영국갯끈풀, 환삼덩굴, 마늘냉이, 돼지풀아재비 17종입니다.

                                                                                                                             <20221028일 업데이트 목록>

 

 

보고 싶었던 이 꽃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출출한 속도 채우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도 식힐 겸 그 동네 냉면집에 들렀습니다. 늦은 점심 때였지만 손님들이 꽤 많았고 그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습니다. 할아버지들 중에는 소주잔을 앞에 놓고 큰 목소리로 나라 걱정을 하시며 토론(또는 말싸움)을 이어가시는 분들도 계셔서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금 기다린 후 나온 냉면은 양도 많은데다가 제육볶음 한 접시까지 곁들여 있어서 가성비가 높은 집이었네요. 옆 식탁의 할머니께서는 냉면만 드시고 고기는 저녁반찬거리로 가지고 가시겠다며 종업원을 부르셨습니다. 늘상 일어나는 일이었는지 그 종업원은 남은 고기를 친절하게 포장해 할머니의 손에 들려드렸는데 그 장면이 참 마음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여름의 출사는 힘든 작업입니다. 꽃을 보며 사진으로 담을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 때 비로소 더위와 피곤이 찾아듭니다. 산도 들도 아닌 햇볕 쨍쨍한 도심으로의 출사는 드문데다가 그 날의 날씨는 습기도 없이 몸을 통째로 구워버릴 듯한 더위...이래저래 덩굴해란초는 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 날 저녁 땀을 식히고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살며시 지우며 무척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이 글를 쓰고 나서 며칠 후 아파트 단지 안을 산보하던 내 눈에 잘 가꾸어진 (우리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들은 정말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일하십니다.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회양목 사이에서 흰색의 작은 꽃이 들어왔답니다. 들여다보니, 세상에나 덩굴해란초 흰색 버전이네요! 누군가 심은 것은 아니겠고 2007년 서울 불광동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드디어 서울의 북동쪽인 우리 동네에까지 번져 왔나 봅니다. 이 식물이 특히 유해하다고 보고된 적은 없으니 우선을 반가운 마음이 앞서네요!

 

단지 내에서 발견한 덩굴해란초의 사진 몇 장을 덧붙여 봅니다.

개체 수가 몇 개 되지 않아서 빈약해 보이지만 이제 새 살림을 시작한 꽃들을 응원합니다.

 



 

 

 

 

 

Cymbalaria muralis P. Gaertn., B. Mey. & Sc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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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들만으로는 꽃의 모습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확대해 보았습니다. 귀여운 토끼, 수다스러운 도날드 덕처럼 보이지 않나요?
꽃잎에 보이는 노란색 반점이나 위꽃잎에 보이는 짙은 보라색 선은 모두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꿀이 여기 있어요!!’라고 크게 외치는 셈이지요.


남유럽 원산의 한해살이풀입니다. 줄기는 바닥을 기며, 때때로 마디에서 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며, 꽃은 연한 자주색 ~ 보라색으로, 잎겨드랑이에서 1 송이씩 나와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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