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랙 정원의 꽃들

마디풀 -  능소화꽃 떨어져 누운 그 곳에 피어난 꽃   예전에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여름을 대표하는 꽃 하면 바로 ‘능소화’가 떠오를 정도로 고속도로변을 비롯한 큰 길가, 고즈넉한 시골의 골목길만이 아니라 도시의 삭막한 담장, 심지어는 전봇대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습니다. 초록의 잎과 어울린 화사한 주홍의 꽃색이 아름답고 풍성한 여름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네요. 한때는 이 꽃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실명이 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건 잘못된 이야기임도 밝혀져서 크게 다행스럽습니다. 사랑했던 임금님에게 버림받고 기다림에 지쳐 죽어 간 궁녀의 애달픈 사연, 꽃에 얽힌 전설도 애잔하여 한층 더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아.. 더보기
미국자리공 -  독(毒)한 식물들, 병 주고 약 준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습니다.남편은 나물과 생선을 좋아합니다. 매끼 빠지면 안 되는 반찬이지요. 그러자니 계절 따라 나물 반찬을 만드는 것이 큰 과제처럼 느껴집니다. 긴 겨울 내내 묵나물을 먹으려니 싫증이 나던 차에 봄이 오니 수퍼마켓의 채소칸에는 싱그러운 봄나물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싱그러워 보이고 씹으면 아삭거릴 것 같은 나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원추리나물! 한 묶음 사다가 살짝만 데칩니다. 왜냐하면 씹는 그 식감이 몹시 그리웠기 때문이었지요. 양념에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밥상에 올려 맛있게 먹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지요. 남편이 배가 살살 아픈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 .. 더보기
큰석류풀 / 석류풀 -  큰 꽃은 커서, 작은 꽃은 작아서 좋더라   얼추 30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묵혀 둔 살림살이에 버릴 것은 끝도 없이 나오고, 그것들을 정리하면서 잊었던 기억들도 쉴 새 없이 떠오릅니다. 이제 이것이 내 생의 마지막 이사가 되길 바라면서 버려야 할 것들을 다 정리해버리고 싶습니다만, 그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남편도 가진 책을 다 정리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은 거의 버리질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남겨 두고 간 책, 물건, 사진, 연애편지들을 어떻게 할까 물어보니 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입니다. 그 모든 물건 하나하나에, 그 사진 한 장 한 장에 배어있는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입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다 소.. 더보기
애기땅빈대 - 나의 정원에 출몰하는 귀여운 빈대    참 느닷없는 소동이었습니다. 21세기 선진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 빈대라니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도 새롭게 ‘빈대발생 현황’이라는 게시판이 추가되어 2023년 11월부터의 현황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의 호들갑이 잠잠해져서 인지 2024년 2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보고서는 올라가지 않고 있네요. 그러더니만 8월 파리 올림픽으로 인해 다시 빈대의 국내 유입이 걱정됐는지 인천국제공항과 항공기의 방역이 강화된다는 뉴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빈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유입되었다고 하니 세계화 시대의 해프닝 같기도 하고, 자칭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국가들의 치부를 보는 듯 하여 우습기도 합니다. 어쨋거나 .. 더보기
큰개미자리 - 똥차, 꽃 그리고 개미    4월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2월말부터 시작된 꽃몸살도 차츰 갈아 앉아가고, 이제는 꽃을 보려면 제법 멀리까지 가야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런 때는 그저 조용히 집안에 앉아 마음을 다스립니다.  며칠 전 자동차 검사를 받았는데 몇 군데 문제가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정비소로 갑니다. 10년 넘게 타고 다닌  내 차, 마치 내 몸처럼 익숙하고 편해서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차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고장이라니...정비소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시더니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고 잠시 기다리면 수리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휴우~~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 습관처럼 근처의 땅바닥을 바라보며 어.. 더보기
털별꽃아재비 꽃에서 ‘엄마’를 봅니다.   2021년 12월 3일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편찮으시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닥친 상실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에 가까스로 병원 측의 허락을 얻어 바로 몇 시간 전에야 엄마의 모습을 본 후, 병원 가까이에 있는 남동생의 집에서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편해 보였고, 그저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그 사이 돌아가셨다 것이 실감 나질 않았습니다. 병실을 돌아 나오며 “엄마, 편히 쉬고 있어. 나 또 올게!”라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그래, 바쁜데 어서 가 보거라. 엄마가 항상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말고...”라고 말하셨죠. 평생 바쁘게 돌아치던 딸년, 언제나 이해하고 받아줄 수밖에 없던 엄마의 그 마.. 더보기
질경이 밟히고 또 밟혀서 세상 끝까지...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웬만한 거리에 있는 곳은 가능한 걸어서 가고, 하루 중 한번은 일부러 산책을 나갑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함께 하느라 바빴던 시절에는 1시간 남짓 걷는 그  시간이야말로 모든 일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온갖 상념과 걱정이 엷어집니다. 걸으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감정들로 가득 찼던 마음에 나무와 꽃과 하늘과 길이 들어섭니다. 때로는 비를 맞으며, 어떤 때는 눈을 맞으며 걷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내게 있어서 ‘걷기’는 신성한 기도의 시간이었다고 기억됩니다. 늦은 퇴근 후 걷는 길에서 4월의 밤이면 맡을 수 있었던 꽃향기, 간혹 키 큰 나무에서 톡톡 떨어지는 이.. 더보기
좀네잎갈퀴 저 작은 꽃에도 모든 세상이 들어있네!    내가 꽃을 보러 다니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어쩌다 꽃 이야기를 하는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리고 제법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대견하게 느끼는 눈치입니다. 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산과 들로 꽃을 보러 다녀야 하고, 책과 다른 자료들도 뒤적거려야 하는데 남편의 입장에서는 나이 들어가는 마누라가 이 산 저 산으로 다닌다 생각하니 늘 불안한 모양입니다. 이 불안은 때로 부부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보기 어렵고 귀한 꽃들은 그 피는 자리 또한 일종의 중요 정보라서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를 안다고 해도 함부로 달려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멀기도 하지만 외지고 험한 산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