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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냄새명아주 -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꽤나 많은 꽃들을 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크랙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냄새명아주’입니다.  처음에는 중대가리풀인줄 만 알고 그냥 무심히 보아 넘겼지요. 그러나 왜 그 ‘촉’이란 것이 있지 않아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 살펴봅니다. 이내 다른 식물임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하필 학원가라 아이들의 왕래가 종일 빈번한 곳 가로수 아래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찬찬히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 흥미진진합니다.  외모만 보아서는 점잖은 명아주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은데 도감을 .. 더보기
붉은서나물 - 철없던 키다리꽃, 철들어 날리는 멋진 결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하듯 꽃과의 만남도 일종의 인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붉은서나물’과 나와의 인연은 그리 찰떡궁합은 아닙니다. 키가 어찌나 껑충하게 큰지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녀석을 찾기가 힘듭니다. 적당하다 싶으면 크랙 사이에서 피어났다는 사실이 잘 표현되질 않습니다. 어느 날 작은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닥에서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이 꽃을 발견하고는 마음에 담아두었으나 다음 날 가보니 모두가 뿌리째 뽑혀 내동댕이쳐진 모습만 보게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붉은서나물은 크랙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치고는 정말 큽니다. 어떤 녀석들은 1m가 넘을 정도이니 마치 철도 들기 전에 훌쩍 키만 커버린 아들 녀석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혼자 슬며시 .. 더보기
주름잎 - 운명을 받아들이는 너의 자세, 너를 대하는 나의 자세    비가 그치고 나니 갠 하늘의 새 날이 더욱 눈부십니다.이른 아침 나비 한 마리가 9층 높이의 창까지 날아올라와 날갯짓을 합니다.어제 비와 밤새 맺힌 이슬로 날개가 무거울 법도 하건만 저 작은 생명체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지척에 산과 농장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여름엔 각종 벌레들이 집안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침대 위에 모기장을 설치해 자고 있습니다. 약을 쓰기는 싫어서 어릴 때부터의 내 호기심도 채울까 하여 작년 여름에 사서 아직 키우고 있는 벌레잡이풀인 ‘네펜데스’의 벌레잡이 통이 아침 햇살에 눈부신 미모를 자랑합니다. 누가 저 우아한 몸짓이 벌레를 잡아 먹이로 삼으려는 식물의 덫임을 눈치 챌 수 있을까요? 가끔 통을 들여다보면 .. 더보기
까마중 - 까만 열매, 그 달짝지근하고 아릿한 ‘멍’의 기억    열흘 남짓 다녀 온 여행, 잠옷으로 갈아입다 내려다 보니 다리에 자그마한 멍 자국이 몇 군데 보입니다. 언제 생겼는지, 어쩌다 생겼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구간 구간 깎아지른 절벽을 탈 수 밖에 없던 여정이었고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아마도 겁에 질려 허둥지둥 정신없이 다니다 이곳저곳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절벽길을 덜덜 떨며 오르고 나서 바라 본 아래쪽 강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옅은 푸른색의 강물은 도도하게 흐르고 그 강변 저쪽으로는 현대식 도시 경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쪽의 ‘과거’와 저쪽의 ‘현재’를 잇는 다리가 연약하지만 아름답게 놓여져 있는 풍경 속에서 과거의 흔적인 유적이 주는 감.. 더보기
쇠별꽃 -  꽃, 그리고 별 헤는 밤   어젯밤 조용히 시작되었던 두통은 밤새 그 존재감을 또렷하게 키워갔고 새벽녘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가장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내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것은 뭘까?’라는 내 질문에 대해 친구가 답한 말을 생각합니다. ‘고통, 참을 수 없는 몸의 고통’이 그것이라고요. 친구는 암투병 중에 있습니다. 정말이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난 며칠간 아무 일도, 심지어는 나쁜 일이라곤 없건만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막연한 불안, 걱정거리는 없는지 애써(?) 찾고, 몸은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이토록 평온한 시간을 누려도 되는 것일까? 병이지요, 네, 그렇습니.. 더보기
애기똥풀 - 가을의 초입에 찾아온 봄날, 말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웃, 애기똥풀이라니!들판에 천지로 피어나는 저 어여쁜 꽃의 이름이 애기똥풀이라니요?처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랍시고 시작했을 때 나는 이 흔한 꽃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노란색이 눈부셨던 이 꽃의 이름이 애기똥풀임을 알고 나서는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될 것임을 예감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지요. 누군에겐들 잊힐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저 귀여운 꽃의 이름이 왜 하필 똥풀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 꽃 선배님은 줄기를 꺾어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진한 노란색 혹은 주홍색빛이 도는 즙이 흘러나왔는데, 그 색이 젖 잘 먹고 건강한 애기의 똥의 색과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은 듣고는 다시 한 번 절대로 잊.. 더보기
쥐꼬리망초 - 트리플 마이너리티, 나와 쥐꼬리망초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더운 여름날들을 보내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제법 살 만 하다고 느끼는 시간, 마음은 또 저만치 달려가며 다가올 가을, 그 쓸쓸함을 미리 쓸쓸해합니다. 아직 혼이 덜 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봅니다. 게다가 아직 한낮에는 30도 가까이 오르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산책길에 아껴두고(?) 보던 쥐꼬리망초의 꽃도 다 지고 이제 굵은 쥐꼬리만 남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도 하지만 선명하게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 이 꽃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긴 했습니다. 크랙 정원의 소박한 꽃들을 찍으려면 자주 거쳐야 하는 ‘관문’까지 통과하여 몇 컷 사진으로.. 더보기
주름조개풀 - ‘잡초’에서 ‘곡식’으로의 길, 그 길 위에서 서성이다.   거실 안까지 파고드는 햇살이 눈부시고 아침 나절의 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끈적거리던 피부의 감촉은 사라지고 이제 건조한 공기 탓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 그 가을이 마침내 내게로 찾아온 것입니다. 햇살은 저토록 찬란한데 그냥 보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입니다. 이런 날에는 빨래를 하고 싶습니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를 끝낸 후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합니다. 건조기에 넣지 않고 그냥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어두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제 이 빨래들은 한 나절만 지나면 뽀독뽀독 깔끔하게 말라 제 몸 안에 햇살을 가득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빨래를 개며 가끔씩 코를 묻어 햇살의 냄새도 맡게 될 것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