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정원의 꽃들 썸네일형 리스트형 까마중 - 까만 열매, 그 달짝지근하고 아릿한 ‘멍’의 기억 열흘 남짓 다녀 온 여행, 잠옷으로 갈아입다 내려다 보니 다리에 자그마한 멍 자국이 몇 군데 보입니다. 언제 생겼는지, 어쩌다 생겼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구간 구간 깎아지른 절벽을 탈 수 밖에 없던 여정이었고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아마도 겁에 질려 허둥지둥 정신없이 다니다 이곳저곳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절벽길을 덜덜 떨며 오르고 나서 바라 본 아래쪽 강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옅은 푸른색의 강물은 도도하게 흐르고 그 강변 저쪽으로는 현대식 도시 경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쪽의 ‘과거’와 저쪽의 ‘현재’를 잇는 다리가 연약하지만 아름답게 놓여져 있는 풍경 속에서 과거의 흔적인 유적이 주는 감.. 더보기 쇠별꽃 - 꽃, 그리고 별 헤는 밤 어젯밤 조용히 시작되었던 두통은 밤새 그 존재감을 또렷하게 키워갔고 새벽녘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가장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내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것은 뭘까?’라는 내 질문에 대해 친구가 답한 말을 생각합니다. ‘고통, 참을 수 없는 몸의 고통’이 그것이라고요. 친구는 암투병 중에 있습니다. 정말이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난 며칠간 아무 일도, 심지어는 나쁜 일이라곤 없건만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막연한 불안, 걱정거리는 없는지 애써(?) 찾고, 몸은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이토록 평온한 시간을 누려도 되는 것일까? 병이지요, 네, 그렇습니.. 더보기 애기똥풀 - 가을의 초입에 찾아온 봄날, 말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웃, 애기똥풀이라니!들판에 천지로 피어나는 저 어여쁜 꽃의 이름이 애기똥풀이라니요?처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랍시고 시작했을 때 나는 이 흔한 꽃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노란색이 눈부셨던 이 꽃의 이름이 애기똥풀임을 알고 나서는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될 것임을 예감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지요. 누군에겐들 잊힐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저 귀여운 꽃의 이름이 왜 하필 똥풀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 꽃 선배님은 줄기를 꺾어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진한 노란색 혹은 주홍색빛이 도는 즙이 흘러나왔는데, 그 색이 젖 잘 먹고 건강한 애기의 똥의 색과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은 듣고는 다시 한 번 절대로 잊.. 더보기 쥐꼬리망초 - 트리플 마이너리티, 나와 쥐꼬리망초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더운 여름날들을 보내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제법 살 만 하다고 느끼는 시간, 마음은 또 저만치 달려가며 다가올 가을, 그 쓸쓸함을 미리 쓸쓸해합니다. 아직 혼이 덜 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봅니다. 게다가 아직 한낮에는 30도 가까이 오르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산책길에 아껴두고(?) 보던 쥐꼬리망초의 꽃도 다 지고 이제 굵은 쥐꼬리만 남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도 하지만 선명하게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 이 꽃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긴 했습니다. 크랙 정원의 소박한 꽃들을 찍으려면 자주 거쳐야 하는 ‘관문’까지 통과하여 몇 컷 사진으로.. 더보기 주름조개풀 - ‘잡초’에서 ‘곡식’으로의 길, 그 길 위에서 서성이다. 거실 안까지 파고드는 햇살이 눈부시고 아침 나절의 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끈적거리던 피부의 감촉은 사라지고 이제 건조한 공기 탓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 그 가을이 마침내 내게로 찾아온 것입니다. 햇살은 저토록 찬란한데 그냥 보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입니다. 이런 날에는 빨래를 하고 싶습니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를 끝낸 후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합니다. 건조기에 넣지 않고 그냥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어두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제 이 빨래들은 한 나절만 지나면 뽀독뽀독 깔끔하게 말라 제 몸 안에 햇살을 가득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빨래를 개며 가끔씩 코를 묻어 햇살의 냄새도 맡게 될 것이고.. 더보기 털쇠무릎 - 털쇠무릎의 마디처럼 튼튼한 관절을 꿈꿉니다! 내가 걷는 모습을 보며 어떤 이들이 슬며시 묻습니다. “저, 혹시 무슨 운동하세요?”심지어 직장에 다닐 때 빠른 발걸음으로 걷는 나를 보고 놀라며 “무슨 일 있어요?”라고 걱정스럽게 묻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무슨 일은 무슨 일, 그냥 늘 하는 일을 하러 평범하게 걷는 것뿐인데...사는 게 바빠서였을 수도 있었지만 타고난 성격에다가 남보다 강한 무릎의 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직장 여성들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지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면 또 다른 성격의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나날이 반복되고는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몸은 그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나.. 더보기 밭둑외풀 - 아득한 고향, '밭둑'의 기억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있겠지만 내게도 지나온 내 삶을 뒤돌아보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청승이나 자기 연민 때문이 아니라도, 예전이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을 때 페이지의 여백에 흘려 쓴 짧은 감상문, 하늘하늘 떨어지는 네잎 클로버를 보면서 문득 그런 순간과 마주치지요. 명절에 되돌아보는 아득했던 시간은 조금 더 색다릅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어렸던 그 시절, 어느 해 추석 명절을 보내고 난 후 뜬금없이 손위 동서가 건네주었던 장난감 같은 목걸이를 기억하며 기어코 눈물이 나고야 맙니다. 나만큼이나 어리고 여렸던 동서... 우리는 말하자면 명절의 전투를 함께 치러내야 했던 전우였을 것입니다. 서툴기만 했던 집안일, 차례 .. 더보기 큰꿩의비름 - 돌 틈마다 알알이 박힌 남한산성>의 ‘시간’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과 감탄은 조금 엷어졌지만 여전히 그 현란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으며, ‘글’이 갖는 힘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작가 자신이 소설의 후기에서 삼학사(三學士 - 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행적을 짤막하게 다루면서 썼던 문장을 나는 작가에게 오롯이 되돌려 주고 싶었습니다. “찬란한 언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여백이 없었다.” 물론 작가의 언어는 ‘찬란하기’만 한 것도, 또 ‘거침없’었던 것도 아니고 재능과 더불어 숱한 고민과 철저한 수련의 결과물이기는 하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치열하고 찬란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