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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광대나물 - 광대와 광대나물, 봄날의 즐거운 축제를 꿈꿉니다. 최근에 1985년 ‘일러스트레니이티드 런던 뉴스’라는 영국잡지사에서 전업 화가, 갤러리스트, 평론가, 미술 기자 등 미술 전문가들을 상대로 대규모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벨라스케스의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선택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벨라스케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 그림이 가진 매력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그림이기도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행복했던 만남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상세하고도 다양한 분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림 오른쪽 구석의 사람들입니다. 궁정 광대...궁정 광대라는 직위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 더보기
개불알풀 - 말도 많고 탈도 많은...그러나 한없이 겸손한 꽃 독감에 걸려 1주일째 골골거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봄도 또한 곱고 조용한 발걸음으로가 아니라 절뚝 절뚝거리며 오고 있습니다. 눈이 내렸다가 다음 날에는 한 여름의 기온으로 올라갔다가, 태풍처럼 강한 바람으로 겁을 잔득 주었다가, 그리고 다시 기온은 곤두박질치고, 매화꽃 향기가 가득해야 할 저 남녘에서 들려오는 거센 산불 소식은 우울에 우울을 더하기만 합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다시 오그라드는 그런 이상한 봄날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Pan's Rabyrinth)’를 보았습니다. 기대를 훨씬 웃도는 감동, 문득 오래 전 보았던 같은 감독의 작품 ‘물의 형태 (The Shape of water)’을 떠올렸습니다... 더보기
냉이 - 새 봄, 변치 않고 찾아온 작은 꽃   며칠 전 아침 눈을 뜰 때는 분명 창밖으로 흰 눈이 소리도 없이 내려 쌓이고 있었는데, 봄은 너무 급작스럽게 들이닥쳤습니다. 한낮의 온도가 20도를 넘다니요. 거리로 나섭니다.내 크랙 정원의 꽃들은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벌써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새 광대나물, 개불알풀, 서양민들레, 점너도나물, 별꽃이 피어났고, 뒤 산의 생강나무도 꽃을 피워 야릇한 향을 내뿜고 있습니다. 이웃 아파트 정문 옆 영춘화에도 봄은 한창이었습니다. 회양목의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향도 산책길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오직 나만 아직 늦은 밤의 불면과 이른 아침의 두통, 막연한 우울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감정의 위기 속에서 어둔 겨울을 헤매고 있었나 봅니다.  .. 더보기
개쑥갓 - 작은 풀씨의 기억, 세상을 바꾸는 힘 2, 3일 날씨가 바짝 춥더니 거리에 떨어져 누운 낙엽의 두께가 제법 무겁게 느껴집니다. 오가는 발걸음에 밟혀 형태를 잃고 바스러진 낙엽도 자주 눈에 띕니다. 낙엽을 치우는 손길도 부산스럽습니다. 몇 년 전 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질을 하는 손길보다는 낙엽치우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떨어진 낙엽을 치우며 비질하는 소리, 모인 낙엽을 태우는 냄새...그 모습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어서인지 천둥 같은 소리로 매연을 뿜어내며 낙엽치우는 기계소리를 들으면 가을날의 낭만은 여지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봄과 여름을 지내며 도시의 거리에 한 뼘의 청량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던 그 사랑스러운 이파리들이 영락없는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도.. 더보기
벋음씀바귀 - 늦가을, 벋음씀바귀의 화양연화를 봅니다.    6개월마다 받는 정기 점진을 받으러 집을 나섭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계단 위에는 노란 은행잎과 발그레한 중국단풍나무의 잎사귀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습니다. 두 가지 색이 어울려 너무도 곱습니다.   내 몸의 일부를 열어 낯선 이에게 보다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굴욕감까지 느껴는 것을 보면 아직은 건강한가 보다고 혼잣소리를 하며 헛웃음을 날려 봅니다. 그러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검사를 받을 때에도 별 생각이 없고 그저 귀찮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요즘은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여러 가지 상상도 하게 되네요. 만에 하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가족들에게는 바로 알려야 하나? 하필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 더보기
큰방가지똥 - 날카로운 가시, 그 내면의 연약함   멋진 책을 만나 읽느라 지루하지 않았던 한 주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2권입니다.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마시멜로) 브로큰 하버> (타나 프렌티 지음, 박현주 옮김, 엘릭시르)가 그 책들입니다.  시간 죽이기 딱 좋은 범죄 소설이라 생각하며 시작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상처 깊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이 녹록지 않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매우 달랐다는 점도 이 독서가 행복했던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앞의 책의 주인공은 자신과 상대방의 사랑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과거의 결핍과 상실을 이겨나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어느.. 더보기
애기황새냉이 - 매운 겨울날을 기다리는 그 의연함과 애잔함...   비라도 올 것 같이 흐린 아침, 베란다 창틀의 화분걸이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아파트 전체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데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배경으로 새들이 가끔씩 포로롱거리며 낮게, 낮게 날고 있습니다.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듯 평화로운 풍경, 마음이 차분하고 이유 없는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필시 좋은 일이 생길거야!’ 나는 중얼거려 봅니다. 그 멋진 예감이 길고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사뿐히 지나 현실로 들어올 것이라 믿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베란다의 작은 내 정원, 작년에 친구가 선물한 포인세티아가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지 잎사귀 중심 부분의 색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저 꽃이 피어나는.. 더보기
개여뀌 - 모든 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입동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낮에는 겉옷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거실 앞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의 색도 힘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안간힘을 쓰며 다가오는 가을을 밀어내고 있나 봅니다. 결국은 무릎을 꿇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버팀’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내가 어떻게 그 사연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만 한낮의 여름과 아침, 저녁의 가을이 교차하는 멋진 날들입니다.​ 여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 달도 더 된 것 같습니다. 바로 뒷산의 그늘에 무더기로 피어난 ‘장대여뀌’를 보면서도 그건 크랙 정원에 핀 것은 아니니 하고 눈을 딱 감았더랬습니다. 뒤이어 ‘개여뀌’와 ‘흰여뀌’가 피어나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한 것도 한참 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