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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정원의 꽃들

깨풀 사람들이 떠난 ‘백사마을’에 피어난 꽃    '백사마을’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일대의 마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마을의 이름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허허벌판에 세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흰모래밭, 백사(白沙) 마을’을 의미한다고요.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가난과 소외된 사람들의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1960년대부터 각종 재해를 입은 이재민들이나 철거민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는 서울시가 청계고가도로 건설을 위해 청계천변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자 오갈 데가 없어진 철거민들이 이 마을로 모여들면서 도시 빈민의 이주정착촌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1980년대~90년대에 상계, 중계 지구에 대규.. 더보기
민들레/서양민들레 물고기와 민들레   좋은 책이라고, 꼭 읽어봐야 한다는 권유에도 나는 쉽게 ‘좋은 책’들을 읽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책은 걸핏하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어떤 감정과 소망을 건드리고 나는 그 깨움이 반갑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가라앉혀 놓았던 흙탕물이 작은 돌멩이 하나로 다시 엉망이 되듯, 내 마음의 평화도 간단히 깨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나는 특히 소설을 읽지 못하고, 시를 읽지 못하고, 수필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겉보기만의 평화라도 행여 깨질까를 두려워하며 감정의 소모가 없는 그저 딱딱한 내용의 책들이나 기껏해야 범죄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죽입니다. 그러나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책들은 사실 쉽게 잊혀 지지 않은 채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기 마련이어서, 이 때쯤이면 안전.. 더보기
괭이밥 그 붉은 잎사귀, 당신을 향한 단심(丹心)이 아니었네!   나는 이 꽃이 원예종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 또한 ‘사랑초’라고 알고 있었고요. 집안에서 키우던 난초 화분 중간에 난 조그만 구멍 사이로 이 아이가 자라나고 끝내 꽃을 피우던 그날 이후 이 꽃은 내게는 사랑초였습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심장을 닮은 저 잎사귀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것을 보더라도 틀림없이 이 꽃의 이름은 사랑초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다 그렇게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이 꽃의 정식 명칭이 엉뚱하게도 ‘괭이밥’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괭이라면 고양이? 네, 고양이의 밥이라는 이름이네요. 고양이가 이 꽃을 좋아해서 우리네 밥처럼 즐겨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알려진 바에.. 더보기
여우주머니 여우는 주머니만 남기고 어디로 숨었을까?   도서관이 집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마음 내키는 시간에 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 대출하고 때로는 열람실에 눌러 앉아 여러 시간 책을 읽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날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놓아 시원해 좋고, 추운 겨울날에는 따스하게 난방이 되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게다가 도서관쟁이(?)들은 조용하고 겸손합니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답니다. 돋보기 안경을 낀 노인분들은 외국어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시면서 여유를 보이시고, 취준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모두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잠시 나와 큰 길 건너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된장찌개 백반을 먹고 다시 들.. 더보기
중대가리풀 거 참 이름하고는...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고도 근시가 심해 평생 눈이 어두웠던 나는 세상이 어둡고 뿌연 것은 말하자면 삶의 디폴트 상태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때때로 밝은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아마도 내가 보는 것보다는 훨씬 밝고 환할 것이라는 상상은 했었지요. 렌즈와 안경 덕분에 그럭저럭 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운전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살아왔으니 그다지 서글픈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불편할 뿐이었지요. 살면서 불편한 점이 그것 하나만도 아니었는데다가, 그나마 나의 뇌가 미약한 시각 신호를 잘 처리하여 세상의 모습을 그런대로 그려주었으니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눈앞은 빠르게 흐려져 갔고 그에 따라 답답함도 커져갔습니다만 그저 늙어가는 탓이라.. 더보기
덩굴해란초 나폴레옹도 이기지 못한 그 기세, 전진 또 전진!   크랙 정원의 매력은 집 가까이에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꼭 하나의 정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나의 크랙 정원들이 있지요. 말하자면 별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별장의 크랙 정원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도시에서 나서 자란 나는 아는 꽃도 몇 개 되지 않았고 또 꽃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힘도 형편없었습니다. 처음 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대개는 인터넷에 포스팅된 꽃 사진을 보며 그 꽃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고, 꽃에 대한 정보는 많은 부분 도감에 의존했습니다. 꽃 사진들을 보면서 유난히 보고 싶어지는 꽃들이 있습니다. 대체로는 누구나.. 더보기
꽃마리 식물도 이타적이라고!  도시에 봄이 오고 등 뒤에 내려쬐는 햇살이 따끈따끈하게 느껴질 즈음이 되면 마음도 따라서 달뜹니다. 작년 10월쯤 끝이 난 꽃구경이 겨우 내내 꽃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지다 보니 겨울은 어찌 보면 식물들 보다 정작 사람들이 더 꽃피기를 애닯게 기다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스멀스멀 봄이 오는 낌새가 느껴지고 남녘 어디에서는 발 빠른 꽃쟁이들이 신상 꽃을 찍어 포스팅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야속한 도시의 날씨는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입김을 내뿜고 봄꽃은 아직 더 기다리라고만 속삭입니다. 드디어 3월이 오고 서울 근교의 들과 산에서 ‘너도바람꽃’을 필두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 마치 오줌 참듯이 간신히 참아온 마음은 ‘꽃이 마려워, 마려워...’ 정신없이 꽃이 있는 곳으.. 더보기
닭의장풀 치밀한 전략가, 속임수에도 급(級)이 있다.   이사를 했습니다. 살던 장소를 옮겨가는 ‘이사’가 이토록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살던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들을 돌돌 말아 낙타 등에 얹어 가볍게 살 곳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들의 삶을 보며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과연 얼마 만큼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삶이 한없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살던 집을 정리하고 힘들여 이사를 하고 나니 이번에는 현실로 다가온 ‘낯섦’의 벽에 부딪힙니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묶어둔 짐을 풀어야 하는데 가위는 보이질 않습니다. 연락해야 할 곳도 많고 받아야 할 전화도 많고, 전화를 받고는 급히 받아 써야 할 것이 생기자 사.. 더보기